안좋을 때 들으면 더 안좋은 노래처럼 내가 아는 신경숙 소설은 우울할 때 읽으면 더 우울한 소설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어떤 카타르시스가 있다. 바닥까지 떨어진 주인공들을 보다가 현실로 돌아오면 나는 굉장히 유쾌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하려는 마음이 전달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일본 소설이 청년기의 아픔을 대변하고 있는 듯한 사실이 안타까워 한글로 쓰여진 품격있는 청춘소설을 쓰고 싶었다고도 했다.
그런데 읽는 이 입장으로서는 청춘소설이라고 하기엔 '죽음'이라는 요소가 너무 많지 않은가 싶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모두 가족이나 친구, 사랑하는 사람을 예기치 못하게 잃는다. 엄마의 죽음, 윤교수 전 애인의 자살, 미래 언니 남자친구의 실종, 미래 언니의 분신자살, 미루의 자살, 단이의 의문의 죽음, 윤교수의 병사......
이렇게 난무하는 죽음속에서 공감했던 것은 우리는 누구나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소중한 사람들을 보낼 수 밖에 없다는 것. 인간에게 그보다 큰 고통이 뭐가 있을까. 그 와중에 끝까지 살아남는 두 주인공 정윤과 명서, 그들에겐 끔찍한 방황속에서도 서로를 지탱해주는 마음이 있었다.
내.가.그.쪽.으.로.갈.게
지금껏 내가 들었던 말 중에 가장 따뜻하고 '사랑해'라는 말보다 더 가슴 저릿한 말이다. 8년만에 정윤에게 전화한 명서가 한 말이기도 하고 이 책의 마지막 글귀이기도 하다. 결국 청춘의 끝은 사랑이었다.
이 책의 막바지에 지금 내 나이쯤 되었을 정윤이 말한다. '여러분은 언제든 내가 그쪽으로 갈게,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나는 진정으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말도 상대방이 원할때나 아름다운 말이다.
나부터 독립적이고 당당하길 바란다. 숨김이 없고 비밀이 없으며 비난하지 않는 인간관계를 원한다. p184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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