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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서유럽

[유럽여행] 파리 - 에펠탑 열쇠고리에 얽힌 사연

 

 

La tour eiffel

반짝이는 에펠탑을 본다면 다소 흉물스러워 보일 수 있는 300m짜리 철탑이 왜 파리의 상징이 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밤이 되면 매 정시에 지하철에서 입구를 향해 뛰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파리는 에펠탑 하나로 충분히 그 빛을 발했다.

 

 

면적으로만 따진다면 파리는 서울보다 훨씬 작은 도시이다. 그래서인지 에펠탑은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서울의 남산타워처럼 (그보다 잘) 아무데서나 보인다. 아무 생각없이 걷다가도 고개를 들어 에펠탑을 보면 '아, 여기는 파리구나' 하는 것이다. 

 

 


 

 

 

 에펠탑을 보러 걸어 가는 동안 열쇠고리 파는 청년들이 끊임없이 말을 걸어왔다. 대부분 흑인이었고 오로지 열쇠고리만 파는지 둥근 철심에 열쇠고리를 잔뜩 걸고 걸어다니며 호객행위를 했다. 세 명쯤 지나치고 나니 사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나에 1유로란다. 모로코에서 무조건 1/10로 흥정하던 버릇이 들어 1유로에 열개를 달라고 했다. 청년은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냐는 표정으로 (그 얼굴과 제스쳐를 본다면 누구나 '아 내가 지금 말도 안되는 소릴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3개까지 줄 수 있다고 했다. 6개 아니면 안산다고 돌아서는데 등 뒤에서 '오케이'소리가 들려왔다.

 

3가지 색상이 있어서 두 개씩 달라고 했다. 중간에 끼어있는 것들을 빼내려니 번거로와 시간이 좀 걸렸다. 드디어 6개를 받아들고 돈을 내려 하는데 하필이면 1유로 짜리가 없었다. 이쯤되면 나는 민폐고객임이 틀림없었다. 익숙하지 않은 작은 단위의 동전들을 뒤적거리는 사이 가까운 곳에서 경찰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청년은 빨리 달라는 손짓을 잠깐 하더니 바로 포기하고 쏜살같이 달아났다.       

 

'내가 지금 뭘 한거지?' 빠리까지 와서 푼돈을 깎는 진상 손님 짓에도 모자라 경찰에 쫒기는 흑인의 삥을 뜯다니.

 

1유로를 손에 꼭 쥐고 잠시 기다렸지만 역시 그는 오지 않았다. 내 미안한 마음과는 상관없이 이 근처를 배회하다가 괜히 해코지를 당할 것만 같았다. 얼른 자리를 떠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는데 반대편에서 건장한 청년 두 명이 걸어왔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생각하는 순간 나는 긴장했지만 그는 나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었다.

 

세상에.. 난 지금까지도 다 큰 어른이 그렇게 티없이 웃는 것을 보지 못했다. 어리둥절한 나에게 땡큐, 땡큐를 연발하며 악수까지 청하는 그와 친한 친구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내가 돈을 주기 위해 쫒아왔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1유로로 그런 웃음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세상에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욕심부렸던 열쇠고리는 어딘가에 굴러다닌다. 그 이후로 비싸지 않은 물건은 깍을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