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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모로코

[모로코일기] 어디서나 믿고 싶은 사람은 있어야 해.





한쪽 눈이 이상한 가디언 아저씨와 나만 아는 비밀이 있다.



처음 몇 번인가..
내가 잠을 이루지 못해 새벽에 삐걱대고 창문을 열면,
그 가디언 아저씨는 무슨 일인가 싶어 곧잘 내 쪽을 올려다보곤 했었다.



그럼 난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숨겼고, 그는 나임을 확인하고는 꼭 내가 보이지 않는 쪽으로 걸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곤 했다. 비록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나는 그런 배려가 고마웠다.


아프리카 이슬람 국가에서 아시아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것은 인내하고 포기해야 함을 뜻한다. 거리에서 인격적인 모멸감과 수치심을 견뎌내야 하고 안전을 위해 여성다움을 버려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경계의 눈으로 보던 그 때엔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저 사람이 정말 나를 지켜주는 사람인지.. 아니면 이 곳을 나보다 더 훤히 알고 있는 저 사람이야 말로 내가 경계 해야 할 사람인지..



반복되는 일상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의 뻔한 인사말 속에서 이제 그가 나를 보는 나머지 한 쪽 눈에서 연민을 읽을 수 있다. 내가 그를 보는 것과 같은, 남들과 다르다는 연민의 눈빛.


 

 
도색조차 하지 않은 회색 벽에 비친 내 그림자는 원래부터 거기에 새겨진 문양인 양 움직임이 없다. 아마도 그 그림자를 보는 사람은 나뿐이 아니란걸 알기 때문에.


그리고 그제서야 난 내 집을 메우고 있는 그리 크지 않은 음악소리가 누군가에겐 음악을 가장한 소음이 될 수 있음을 느끼고 볼륨을 줄인다. 그 정도로 이 곳의 밤은 고요하다. 그리고 맑다.




2008.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