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인들이 조금만 더 친절했더라면..
로마 여행은 아주 화창한 날 시작되었다. 어제 늦게 로마에 도착하여 그 유명한 트레비 분수를 본 직후에 왠지 밤에 돌아다니기 무서워 금방 돌아와버렸다. 그 때는 북아프리카에 살고 있어서 어두워지면 돌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머릿속에 새겨져 있었기도 했지만 유럽도 밤에 다니기 적당한 곳는 아니다. 저녁시간에 쇼핑을 한다고 어물쩡대다가는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다. 아마 우리나라처럼 밤에 돌아다니기 좋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로마는 볼거리의 천국이다. 발걸음 닿는대로 어디를 가도 깜짝 놀랄만한 유명 문화재가 나온다. 얼마나 멋졌는지 다음으로 갔던 파리는 시시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화창한 날씨까지 더해져 도시가 반짝반짝 빛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로마에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탈리아 여행 중 내가 만났던 친절한 사람은 로마 관광안내소의 젊은 직원뿐이었다. 그들은 관광자원으로 먹고 살면서도 우리 같이 넘쳐나는 관광객들이 그리 달갑지 않은 눈치였다. 가진자의 여유랄까? 매표소 직원, 패스트푸드점 알바생, 기념품가게 상인.. 모두들 단체로 교육을 받았는지 웃고 있는 내가 무안해질정도로 귀찮아 하는 표정들이다. 그들이 조금만 더 친절했더라면 로마는 더 빛났을텐데...
천사의 다리로 가는 중.. 길가에 나란히 들어선 노점상들도 구경거리가 된다.
Ponte Sant'Angelo 천사의 다리
테베레강을 건너는 산탄젤로 다리. 일명 천사의 다리라고 불린다. 반대편에서 찍었으면 산탄젤로 성로 보여 더 드라마틱한 장면이 연출되었을 테지만 나는 평범한 집들이 있는 이 배경이 더 좋았다. 천사의 다리는 로마의 다른 유명한 곳(예를 들면 콜로세움, 바티칸시국, 스페인 광장, 진실의 입 등) 들에 비해 비교적 덜 유명한 곳이지만 다리와 근처 배경이 너무 예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다. 과연 천사의 다리라는 예명을 붙일만도 하다. 이 천사 조각상들을 못보고 지나쳤으면 정말 아쉬울뻔 했다.
Piazza Navona 나보나 광장
내가 본 로마의 두번째 베스트 스팟. 고대 로마시대에는 전차경기장이었고 그 당시 로마황제가 앉았던 관람석 자리를 주변으로 분수와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이 만들어지며 광장이 형성되었다. 광장에는 세개의 분수가 있는데 어느것 하나 뒤지지 않고 '여기가 바로 로마다'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화면에 보이는 것은 가장 눈에 띄는 모로분수.
Pantheon 판테온 신전에는 절대 비가 새지 않는다고?
나보나 광장에서 젤라또 아이스크림 하나 먹으며 쉬다가 가까운 판테온 신전으로 갈때쯤 또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에 있는 내내 하루에 한번씩은 비가 꼭 내렸다. 이렇게 화창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듯 소나기가 쏟아져 내리고 또 다음날은 맑기를 반복했다.
신들에게 바치는 신전이자 라파엘로를 비롯한 이탈리아 왕들의 무덤이 있는 곳, 판테온.
소나기가 내리자 성스러운 신전은 순식간에 여행객들의 도피처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비가 내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여기저기 다리가 아픈 관광객들이 주저 앉는 사태가 벌어졌고 관리요원들은 일으켜 세우기에 바빴다. 커다란 원형 모양의 내부를 살펴보니 창문은 전혀 없고 천장 가운데 뚫린 커다란 원형으로 빛이 들어왔다. 이 천장의 구멍은 완전히 뚫려 있지만 내부의 상승기류를 타서 안으로는 비가 새지 않느다는 여행 지침서의 내용을 읽었다. 나는 신전 내부보다 천장만 뚫여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 비가 새지 않으면 얼마나 혁신적인 건축기술이란 말인가?
빗줄기가 굵어질수록 천장에 보란듯이 뚫린 구멍으로 비가 쏟아져내렸고 바닥이 흥건해졌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그럴거야.' 라고 생각해보아도 역시 실망스러웠다. 판테온은 현재의 건축기술로도 만들기 힘들다는 내용도 책에 써 있던데 그것도 거짓말일까? 굳이 그런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거의 2000년이 되어가는 이 건축물이 대단한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일텐데 ...
조금 불편한 진실을 안고 이렇게 한참을 서서 기다리다 결국 비를 맞고 숙소로 돌아갔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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