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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
읽기 전
죽음은 두려운 존재다. 정확히 말하면 나의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이 두렵다. 내가 죽으면 그야말로 내 세계가 끝나버리는 것이므로 뒷 일은 크게 신경쓸 것이 없다. 그렇지만 내 삶의 일부인 사람들이 사라진다면, 남은 인생의 그 뻥 뚤린 공백을 어떻게 외면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생각도 어찌보면 보살핌만 받으며 살아온 나의 미성숙한 생각의 일부이다. 내가 반드시 책임져야 할 것들이 생기면, 나의 죽음으로 곤란해질 사람이 생기면 그때는 내 죽음 또한 두려워질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며 사노 요코의 '죽는게 뭐라고' 를 읽기 시작했다.
사노 요코
<죽는게 뭐라고>는 작가인 사노 요코가 암 재발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 죽음에 대해 쓴 기록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이 인생 중 가장 행복하다.
일흔은 죽기에 딱 적당한 나이다.
미련따윈 없다. 일을 싫어하니 반드시 하고 싶은 일도 당연히 없다.
어린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죽을 때 괴롭지 않도록 호스피스도 예약해 두었다.
집 안이 난장판인 것은 알아서 처리해주면 좋겠다.
이 부분을 보면 그녀는 굉장히 긍정적이고 쿨한 성격인 것 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사노 요코씨는 싫은게 참 많은 사람이다. 일도 싫고 걷는것도 싫고 공무원, 정치가, 교사, 다 믿을 수 없으며 특히 전후 민주주의를 싫어한다. '적어도 옛날에는~' , '그런데 요새는'이라는 표현을 여러번 쓰며 세상 돌아가는 것을 마뜩잖게 여긴다. 이렇게 까칠한 사람이 죽음만큼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니.. 삶이 그토록 고단했던 탓인가 아니면 후회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일까.
그녀는 어린시절 전쟁과 가난을 경험하며 가족들의 죽음을 여러번 목격했고 '돈과 목숨을 아끼지 말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기에 죽음 또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읽고 나서
솔직히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지 못했다. 나는 일흔살이 아니고 사무라이 정신도 모르니까.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한 어느 비행기 기장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는 꼼꼼히 비교하여 병원을 정하고 입원을 결정했다.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는 강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건강해 보이던 사람이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한 후로 급격하게 야위어 가다가 금방 죽었다. 그의 아내가 말하기를 그는 아마도 '누군가 말려주길 바랬던 것 같다'고 했다. 그 때 나온 구절이 이 책을 읽은 나의 결론이다.
아무리 냉정하고 침착한 사람이라도, 생각의 가장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는 본인조차 알 수 없다.
막상 부닥쳐보지 않으면 모른다. (중략)
환자의 언어 건너편에 있는, 말로 표현되지 않은 감정은 누구도 부닥쳐보지 않으면 모른다.
이성이나 언어는 압도적인 현실 앞에서는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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